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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 더콕] '삭발 정치'의 역사...과거 '보수의 삭발'은 어땠나? / YTN

2019-09-20 72 Dailymotion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한국당의 릴레이 삭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1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황교안 대표도 머리를 깎았습니다.

정치권 삭발투쟁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낯선 풍경도 아닙니다.

오늘 더콕에서 되짚어보겠습니다.

이른바 삭발 정치, 국회에서는 1987년이 시작입니다.

6월 항쟁으로 시민이 쟁취한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로 갈라졌습니다.

당시 김영삼 후보의 통일민주당에 속해 있던 박찬종 의원은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습니다.

단일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97년 1월은 노동계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투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던 시점입니다.

국회에서는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김성곤 의원이 삭발로 항의했습니다.

1996년 12월,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의원들이 복수노조 금지 연장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 문제였습니다.

야당의 반발, 노동계의 반대투쟁이 확산된데다 한보비리, 대통령 아들 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김영삼 정부와 여당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결국 1997년 3월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 정치활동 금지 규정이 삭제된 노동법 재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도 삭발한 사례가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때 여당이었다가 극심한 내부 갈등과 분당 끝에 한나라당과 함께 탄핵에 앞장섰던 새천년민주당에서 파열음이 나왔습니다.

설훈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설 의원은 탈당했습니다.

사학 비리를 막기 위해 2005년 12월 개정된 사학법.

사학재단이 가족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며 각종 비리를 저지른다는 지적에 따라 개방형 이사제, 감사 강화, 학내 구성원의 학교 운영 참여 등을 보장하는 개혁 법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 같은 사학법 통과에 강력히 반발했고 2007년 2월, 한나라당 원내 부대표였던 이군현, 김충환, 신상진 의원이 재개정을 촉구하며 삭발했습니다.

결국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입장을 선회했고 2007년 7월, 사학법 재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재개정안은 개정안에 비해 재단...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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